|
칫소는 명치 말엽에 수력발전을 하는 회사로써 출발했습니다. 그 전력을 이용해서 카바이트 공장을 미나마타 시에 만들어 이윽고 화학 비료의 생산을 시작해서 일본에서는
중요한 화학회사로서 성장했습니다. 칫소의 발전은 미나마타의 시의
발전이기도 했습니다. 미나마타시는 인구가 증가해 쿠마모토현내에서 굴지의 공업도시가 되어 이전의 공장장이 시장에 취임하는
등, 지역사회에 대한 칫소의 영향력과 주민의 칫소에의 의존도는 커졌습니다. 칫소는 화학비료 외에 초산, 염화 비닐와 그 성형에 필요한 가소제의 생산에 주력하여 전후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을 지탱하는 기업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대정 시대부터 칫소공장 폐수에 의한 해양오염은 수 차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칫소는 1932년부터 1968년까지 초산과 가소제 등의 원료가 되는 아세트 알데히드를 만들 때의 촉매로서 무기수은을 사용해, 그 과정에서 발생한 메틸 수은을 1966년까지 거의 처리하지 않은 상태로 바다에 버려왔습니다. 칫소는 공장 폐수가 미나마타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조업 중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미나마타병을 둘러싼 재판의 판결에서 이와 같은 기업 윤리의 부재가 엄하게 비판되었습니다. |